인공지능이 문장을 만든다고 할 때, 그것이 정말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사람의 말은 세상에서 직접 부딪히는 경험과 감각 위에 쌓여 있지만 LLM의 말은 방대한 텍스트 패턴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LLM이 만들어내는 언어 속에는 묘하게도 우리의 세계가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언어가 곧 세계라는 말이 떠오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세계를 ‘그림’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LLM은 말할 수 있는 문장을 폭넓게 생성해내지만 그 말이 실제 세계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텍스트라는 장막 너머에서 ‘통계적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직 분명치 않다.

괴델은 형식 체계가 스스로를 완전히 증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LLM 역시 방대한 텍스트라는 ‘형식 체계’에서 작동하며 그 체계를 벗어나 자기 작동 원리를 오롯이 해명하는 데에는 스스로의 한계를 가진다. 이 점에서, 우리가 언어를 통해 모든 것을 정의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LLM 역시 텍스트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 바깥의 세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컴퓨터가 자기 코드를 읽을 수 있어도 스스로를 완전히 재설계하지는 못한다.
이 말은 LLM에게도 적용된다.
LLM은 자신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대략적인 설명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구조 자체를 새롭게 짜는 일은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반성한다 해도 자기 뇌를 갈아엎는 단계까지 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LLM은 프롬프트에 따라 즉각적으로 답변을 바꾸고 그 답변은 확률적 예측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방식, 단어의 선택, 문맥의 흐름에 따라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전혀 달라진다.
하나의 고정된 세계를 가리키기보다 매 순간 질문자에 의해 갱신되는 가능성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런 구조는 ‘관찰하는 방식이 결과를 바꾸는’ 체계와 닮아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물리학의 통찰은 어쩌면 LLM의 언어 생성 구조와도 겹친다.
LLM은 관찰자이자 질문자인 사용자의 방식에 따라 그때그때 전혀 다른 언어적 세계를 구성한다.

이때 생성되는 문장은 고정된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입력된 조건과 맥락에 반응하여 실시간으로 조합된 결과다.
그 점에서 LLM은, 정적 지식보다는 맥락과 조건에 따라 ‘해석된 의미’를 만들어내는 해석적·조합적 사고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보면 LLM은 인간의 사고 방식과 닮은 구석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삶의 맥락 속에서,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해석한다. 정답을 꺼내 쓰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언어 속에서 의미를 조율하고 생성하는 존재다.

 

그렇지만 많은 인공지능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세계 안에 몸을 지니고 살아간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고 아프고 추위를 느끼며 그 감각을 언어로 옮긴다.
경험은 언어를 떠받치고, 감각은 의미를 만든다. LLM에게는 그런 몸이 없다.

LLM은 텍스트 안에서만 태어나고 성장한다. 몸으로 부딪히며 형성된 세계가 아니라 언어의 궤적 위에서 예측 가능한 조각들을 이어 붙일 뿐이다. 이를 두고 “언어가 곧 세계”라는 관점에 따르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 “삶의 맥락이 의미의 조건이 되는가?”라는 관점에선 결정적 한계로 볼 수도 있다.

결국 LLM이 월드모델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인식하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 역시 불완전한 체계 안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그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끊임없이 넘어보려 애쓴다.

LLM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식의 거울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거울 속 상(像)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그 모습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나로서는 이 질문에 대한 최종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지만 적어도 LLM의 언어가 우리 세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지는 계속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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